MBC 뉴스데스크의 '보수·진보 체질 따로 있나' 보도가 네티즌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특히 '알통 굵기가 정치적 신념을 좌우한다'는 내용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이 많다.
18일 MBC 뉴스데스크는 "알통의 굵기가 신념에 영향을 미친다"며 두 남성의 사례를 보여줬다. 저소득층을 위한 소득분배에 대한 견해를 묻자 팔의 알통 굵기가 35cm인 남성은 "국가의 과도한 세금은 지나치다"고 말했으며, 알통 굵기가 31cm인 남성은 "세금을 거둬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건 국가의 의무이고 책임"이라고 답했다.
MBC는 이와 관련해 알통이 굵은 남자들 다수는 자신의 경제적 형편에 유리한 이념을 선택하고, 알통이 가는 남자들 다수는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소극적이라는 이코노미스트의 보도를 소개했다.
이코노미스트의 지난해 10월 기사와 이에 인용된 논문의 요지는 "근육질의 남성일수록 자기 이익에 부합하는 정치적 의사 결정을 하는 경향이 나타난다"(men with greater upper body strength more strongly endorsed the self-beneficial position)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근육질인 사람들은 계급에 따라 정치성향이 결정되지만, 마른 사람들은 그런 경향이 훨씬 덜하다(strong men argued for their self interest : the poor for redistribution, the rich against it. Weaklings, however, were far less inclined to make the case that self-interest suggested they would)"라고 보도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부자 계급인 근육질 남성은 소득분배에 반대하겠지만, 상대적으로 가난한 계급인 근육질의 남성은 소득분배에 찬성할 수 있다. 알통이 굵은 남성은 보수, 알통이 가는 남성은 진보로 구분한 MBC의 보도와는 다르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뉴스가 나간 후 트위터에서 가장 많이 리트윗 된 네티즌 의견은 "MBC 뉴스에서 알통 굵기가 정치 신념을 좌우한다네요. 골상학을 선전했던 나치가 부러웠나봐요. MBC의 이른바 근육정치학, 21세기의 새로운 변종 우생학이로군요"(leeson***)이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unheim)은 뉴스 화면을 캡쳐한 사진을 리트윗하며 "오늘의 오늘의 개그"라고 적었으며, 작가 고종석씨(@kohjongsok)는 "MBC 뉴스데스크 알통뉴스는 초대형 방송사고"라고 지적했다.
이밖에도 일부 네티즌들은 직접 논문사이트를 찾아 해석, 비교하는 열의를 보였으며 "MBC 뉴스에 알통 굵으면 보수라는데 나도 힘주면 나름 단단한 팔뚝. 그럼 내가 바로 애국보수다!"(newdon***), "한민관이 '진보의 화신'이라면, 숀리는 '보수의 아이콘'쯤 되려나?"(bjm4***), "내가 왜 사회에 비판적인가 궁금했었는데 내 알통이 아놀드 슈워제네거에 비해 너무 얇다는 사실을 비로소 깨달았다는... 이런 놀라운 이치를 깨닫게 한 MBC에 감사해야"(bulko***) 등의 의견이 올라왔다.
MBC <뉴스데스크>는 18일자 보도 <보수·진보 체질 따로 있나?>에서 "신념은 어느 정도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며 또 육체적인 힘이 영향을 미친다는 흥미 있는 연구결과가 나왔다"며 '뉴스플러스'를 소개했다. 뉴스플러스는 두 꼭지(<알통 굵기 정치 신념 좌우>, <정치 성향도 유전자 따라?>)로 기획됐다.
<알통 굵기 정치 신념 좌우>에서 MBC 기자는 "임 씨와 금 씨 모두 소득이 꽤 높고, 자신이 이 사회에서 살만하다고 생각하는 중산층"이라며 수년 간 헬스장에서 몸을 만든 임 씨와 운동을 하지 않는 금 씨의 팔뚝 굵기를 측정했다. 임 씨는 알통둘레가 35cm였고 금 씨는 31cm였다.
임 씨와 금 씨는 '재분배 정책'에 대해 각각 "더 어려운 사람이 있다고 국가에서 과도하게 세금을 걷는다면 그건 좀 지나치지 않을까?" "세금을 거둬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건 국가의 의무이고 책임"이라고 말했다. MBC <뉴스데스크>의 보도의 프레임에 따르면, 임 씨는 '보수'적인 발언을, 금 씨는 '진보'적인 발언을 한 셈이고, 이는 좌측 상단에 붙어 있던 "알통 크면 보수"라는 자막에 부합하는 사례처럼 보인다.
MBC 기자는 "받아온 교육과 가정환경 등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면서도 "미국과 덴마크의 연구팀이 소득이나 가정환경이 다양한 미국, 아르헨티나, 덴마크 등 3개국 1,500여명에게 부의 재분배에 대한 평소 신념을 물었더니, 알통이 굵은 남자들 다수가 자신의 경제적 형편에 유리한 이념을 선택한 반면, 알통이 가는 남자들 다수는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소극적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연구팀은 그 원인을 원시시대부터 내려온 인간의 본능에서 찾았다"며 "이는 힘이 약한 쪽이 이기적 주장을 하다가는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었을 것이란 추론이다. 반면, 힘으로 생존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던 여성들의 경우에는 알통의 굵기와 신념이 별다른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았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보도했다"고 말했다.
이날 MBC <뉴스데스크>가 인용한 연구는 캘리포니아 대학 교수 Leda Cosmides와 덴마크 오르후스 대학 Michael Bang Petersen 강사 등이 작업 중인 <The ancestral logic of politics(정치의 계통적 논리)>이다.
요약본에 따르면, 연구팀은 "상체 근력(알통)이 뛰어난 남성일수록 자기 이익을 강하게 지켜내려고 한다"(men with greater upper body strength more strongly endorsed the self-beneficial position)"는 상관 관계를 밝혔다.
또, 근력(알통)의 유무는 남성이 속한 사회경제적 계층의 성향에 따라 재분배 정책 지지 정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Among men of lower socioeconomic status (SES), strength predicted increased support for redistribution. Among men of higher SES, strength predicted increased opposition to redistribution)
정리하면 MBC의 주장처럼 단정적으로 '알통의 크기에 따라, 정치적 신념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알통이 있는 남성일수록 자기 이익에 부합하는 정치적 의사 결정을 확고하게 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뜻이다. 따라서 부자(사회경제적 계층이 상위인 집단)에 속하며 알통이 있는 남성은 부자이지만 알통이 없는 남성보다 재분배 정책에 반대하려는 경향이 강하고, 빈자(사회경제적 계층이 하위인 집단)에 속하며 알통이 있는 남성은 빈자이면서 알통이 없는 이들보다도 더 재분배 정책에 찬성표를 던진다는 것.
앞에서 보았듯, 논문에 대한 MBC 기자의 설명은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MBC <뉴스데스크>는 달랑 두 사람의 사례만으로 논지를 일반화시키고자 하는 무모함을 선보였고 "알통 크면 보수"라는 자의적 해석을 덧붙였다. 이는 근력과 정치적 의사 결정의 상관성을 밝힌 논문 결과를 단정적인 '인과 관계'로 오인한 채, '보수·진보' 프레임에 억지로 끼워 맞췄기에 발생한 촌극이다. 졸지에 임 씨는 적극적인 '보수' 남성이, 금 씨는 소극적 '진보' 남성이 돼 버렸다.
또, 수많은 논문 중에서 왜 이 논문이 소개돼야 하는지, 다른 논문과 다르게 어떤 점이 특기할 만한 것인지 세부적 설명을 덧붙이는 게 공영방송의 도리일 것이다. 하지만 MBC <뉴스데스크>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러한 MBC의 보도는 시청자들에게 조롱거리가 될 뿐만 아니라 정치적 의도까지 의심케 만든다. 자기 이익에 따른 정치적 의사 결정을 '신념'으로, 신념을 '(한국식) 보수와 진보'로 해석하는 공영방송의 사고 회로를 시청자들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논문 작성자들에게 MBC <뉴스데스크>의 보도를 보여준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그들의 얼굴이 붉그락푸르락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